:::::::::: 정보디스플레이학과 ::::::::::
 
작성일 : 12-12-13 13:49
에꼴 폴리테크닉(École Polytechnique) 후기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591  

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99학번인 김가현입니다. 저는 장진 교수님의 도움으로 경희대학교-에꼴 폴리테크닉(École Polytechnique, 이하 폴리테크닉) 복수학위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먼저, 2007년 한 해 동안 장진 교수님 지도하에 한국에서 공부했고 그 후 도불(渡佛)하여 나머지 일 년 반 가량은 프랑스의 폴리테크닉에서 공부하여 각 학교당 하나씩, 두 개의 독립된 석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석사 졸업 후 다시 폴리테크닉 박사과정에 지원하여 삼 년 간의 학위과정 끝에 지난 10월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현재 저는 정부출연 연구소인 한국 에너지기술 연구원에 임용되어, 내년부터 연구생활을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저는 본 후기를 통해 폴리테크닉과 프랑스 생활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복수학위제도를 통해 시작한 유학생활 중 제가 느꼈던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을 여러 예비 후배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먼저, 프랑스 파리 근교에 위치한 폴리테크닉은 그랑제꼴(Les grandes écoles, 프랑스의 고등 교육기관으로 프랑스 학제상 대학보다 상위 클래스입니다)중에서도 서열 1위의 초특급 명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794년 개교 후, 나폴레옹에 의해 기술장교 양성학교로 재편된 이래, 지난 200년간 군사학교의 전통을 유지하며 프랑스의 이공계 엘리트를 배출해온 곳이며,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모두 포함하여 정원이 3000명 이하인 소수정예 학교입니다.

Times, AFP 등의 언론기관에서 발표한 전세계 대학 종합 순위에서도 2005년 세계 10위에 오르는 등,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대학 순위가 영미권 대학에 호의적이라는 점과 대학교의 규모가 평가에 반영되는 점, 그리고 폴리테크닉이 프랑스의 소수정예 학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은 세계 10위라는 순위도 오히려 과소평가되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폴리테크닉은 개교이래 앙리 베크렐(Henri Becquerel,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비롯하여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é), 루이 코시(Louis Cauchy),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등을 배출하며 과학기술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해왔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영,미권 대학들과 비교하여 부연 설명을 한다면, 폴리테크닉은 하버드(Harvard), 예일(Yale), 칼텍(Caltech), MIT, 캠브릿지(Cambridge) 등 세계 유수의 명문대와 경쟁하는 동시에 교수와 학생들의 교류도 아주 자유롭고 활발한 학교입니다. 다시 말해, 폴리테크닉은 전 세계의 명문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외국 명문대에 진학하려면 학비가 얼마나 들까요? 경희대를 통해 복수학위 과정에 지원하여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경희대를 통해 복수학위과정에 지원하면 석사과정 중 등록금은 한국/프랑스 어디에 있든 모두 경희대 석사과정 등록금의 반액만 납부하면 됩니다. 복수학위 제도 자체에서 등록금의 반액을 지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처음 일 년간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는 교수님 재량에 따라 소정의 생활비를 지원 받으며, 이듬해 프랑스에 가게 되면 역시 연구소에서 실험학기를 이수하는 동안 급여가 지급됩니다.

거기에 더하여,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학위 과정을 밟게 된다면 경제적인 지원은 더 좋아집니다. 복수학위 과정은 석사학위 졸업과 함께 끝나지만, 박사학위는 학생이 원하면 응시할 수 있는 독립적인 폴리테크닉 학위 과정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박사과정 학생에게 법적으로 인건비를 지급해야 하는데 급여의 수준은 종류에 따라 매월 1400~2300유로 정도입니다. 거기에 중복 수혜가 가능한 정부 장학금을 받거나, 유럽 현지의 기술동향을 소개하는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파트타임을 한다면 한국 직장인과 비슷한 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 복수학위과정 동문 중 한 명은 세후 연봉으로 4000만원 수준의 급여에 보너스와 퇴직금까지 받으며 공부했습니다. 프랑스의 학비는 전액 무료이며, 박사과정의 경우 일년에 약 350유로 정도의 등록비가 있는데, 이 정도의 등록금은 위의 박사학위 급여 수준에 비교하여 전혀 부담스러운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미권 유명대학의 연간 학비와 비교해본다면 폴리테크닉 학위과정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폴리테크닉 캠퍼스에는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가 잘 준비되어 있고, 정원도 넉넉하여 기숙사를 배정받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기숙사비는 매월 약 400유로이고, 학교 밖에서 따로 자취하고 싶다면,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원룸의 경우 약 월 500유로 이상이 소요됩니다. 주거비용이 다소 비싼 듯 하지만, 처음 프랑스에 도착하게 되면 석사과정 학생은 공식적으로 급여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의 주거 보조비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알로까시옹(Allocation) 이라 부르는 이 주거 보조비용 역시 방세와 주거 형태에 따라 다르지만 월세의 약 반액 정도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외국인에게도 주거 보조비 제도의 혜택을 주는 프랑스의 앞선 사회보장 제도에 감탄하게 됩니다.

폴리테크닉에서 이루어지는 학업과정은 한국과 다른 점도 있고 비슷한 점도 있습니다. 폴리테크닉에서는 크게 볼 때, 한 해의 상반기는 stage라고 하는, 쉽게 말해, 실험에 집중하는 학기이며, 가을, 겨울의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강의를 수강합니다. 연중 상반기의 실험학기에는 먼저 LPICM (Laboratoire de Physique des Interfaces et Couches Minces, 계면 및 박막 물리 연구소)이라는 연구소에서 프랑스 교수님들의 지도 하에 실험에 전념하게 됩니다. LPICM은 이미 외국인 연구원들이 많은 연구소이기도 하고, 첨단과학 분야의 전문용어는 대부분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연구소에서의 생활은 불어가 서툴러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LPICM의 연구주제는 장진 교수님 연구소와 아주 유사하여, 정보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나노 재료과학 등의 여러 주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연구소에서 적응하는 일은 걱정했던 것보다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복수학위 과정의 상황을 기준으로 설명한다면, 먼저 약 일 년간 장진 교수님 연구소에서 실험을 배우고 프랑스에 가게 되면 같은 학년 프랑스 학생들의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실전 경험을 쌓은 상태가 됩니다. 간단히 말해, 경희대학교에서 실험을 열심히 배우기만 하면, 프랑스에서의 실험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연중 하반기에는 본격적으로 강의를 듣게 되는데, 한국과 똑같이, 개설된 강의는 수강신청을 통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고체물리, 전자학, 양자역학 등 원론적인 학문에서부터 평판 디스플레이, VLSI, 태양전지 등 최첨단 응용 학문까지 다양한 과목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강의는 대부분 불어로 이루어지지만, 강의 수준은 한국 기준으로 학부 3,4학년 정도의 수준이어서, 한국 석사과정 학생이라면 사실상 선행학습을 하고 가는 셈이라 따라가기에 그다지 어려운 점은 없으며, 강의시간 중 언제나 강의를 끊고 질문이 가능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강의 중 교수님께서 불어로 강의를 하다가 한 학생이 영어로 질문을 하면, 교수님께서 답변과 함께 이후의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고, 또 다른 학생이 불어로 질문을 하면, 다시 강의가 불어로 진행되기를 반복하는 진풍경이 자주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비록 불어에 서툴더라도 이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강의에 참여하면 수강하는 데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강의는 암기식이 아닌 철저히 실용성을 목표로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물리 법칙을 하나 배우게 되면, 그것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물리 법칙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려주는 식입니다. 한편으로는 대단히 원론적으로 기초부터 아주 차근차근 알려주는 측면도 있는데, 학기 초에는 답답할 정도로 쉽고 천천히 나가다가 학기말이 다가오면서 진도가 점점 빨라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시험 기간에도 역시, 한국 대학교의 시험과 다른 점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시험 문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감독하는 교수님들이 대단히 협조적입니다. 점수를 깎고 서열을 나누기 위한 시험이 아니기 때문이며, 교수님들은 개별 학생이 강의내용을 얼마나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첫 시험을 낙제해도 재시험 등의 구제 대책이 있고, 온정적인 한국의 사제관계에 비해 냉정할 것 같은 느낌인 프랑스도 사실은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점은, 재시험을 보게 되어도 교수님들이 역시 협조적이며, 시험점수에 평소의 강의 태도까지 반영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최악의 상황이라도 강의 때 딴짓 하거나 졸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만 보여줘도 교수님들이 그 노력을 인정해 준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서, 혹시라도 혈혈단신 외국 유학 길에 나섰다고 생각해봅시다. 언어부터 시작해서 주거문제, 행정처리, 문화적 차이의 이해 등 초기정착 과정을 전부 혼자 해결해야 하는데, 그와 동시에 세계 최고의 엘리트들과 경쟁하며 공부까지 해야 합니다. 사실, 위에 열거한 것들은 초기에 복수학위과정 선배들이 맞닥뜨렸던 현실적 어려움이었습니다. 유학시절, 주위의 다른 프랑스 유학생들을 만나서 유학기긴 중 어려움들에 대해 얘기해보면 대부분의 경우 모든 문제를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점을 꼽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복수학위과정이 칠 년 차에 이르러 많은 선배들이 여러분 대신 시행착오를 겪으며 대부분의 난관들을 해결했고, 생활은 물론 학업에서도 선배들의 조언을 구할 수 있어 더 이상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 오 년 동안, 신입생들의 초기 적응과정과 행정처리가 제가 보기에도 눈에 뜨이게 쉬워졌고 빨라졌습니다. 물론, 새로이 프랑스에 도착한 신입생들에게 고민과 어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단언컨대, 최소한 허허벌판에 내던져진 듯한 막막함은 없어졌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복수학위 과정은 매 년 다섯 명의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는데, 함께 유학 길에 오른 동기들 또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커다란 의지가 됩니다.

그러면, 위에 언급한 여러분의 선배들은 모두 졸업 후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지난 육 년간 졸업생들의 진로 중 대표적인 것만 나열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석/박사 과정 졸업 후, 해외 명문 대학교에 진학(영국 Cambridge 대학), 해외 대기업(일본 도레이), 국내 대기업(삼성전자, 삼성종합기술원, LG전자, LG디스플레이, 현대중공업, KCC…), 국내 공공기관(에너지기술평가원, 에너지기술연구원) 이외에도 서울대학교, KAIST, GIST와 같은 국내 명문대학으로의 진학 등… 많은 졸업생들이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요직에 진출하여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복수학위과정의 많은 동문들이 위에 언급한 대기업과 국내 명문대학에서 전문연구요원(병역특례제도)으로 복무하며 병역의 의무까지 같이 수행 중입니다.

유학생활의 의미가 단지 외국 학위에만 있을까요? 프랑스에 살면서 외국의 문화, 예술을 체험하는 것도 유학생활이 주는 선물입니다. 대중매체를 자세히 보면, 윤택하고 풍요로운 삶의 기준으로, 많은 경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역사가 긴 유럽 국가들의 예를 많이 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프랑스는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세계의 중심지로 여겨졌고, 우리나라는 경제/문화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국내에서는 체감하기 힘들지만, 세계적으로 프랑스는 불어를 중심으로 유럽/미주/아프리카 등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폴리테크닉에서 전철을 타고 30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파리에 갈 수 있는데, 그 곳에는 역사적인 건축물, 수많은 유명한 미술품, 명품으로 대표되는 패션과 음식 등 유, 무형의 문화유산이 전 세계의 관광객을 끝없이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낮에는 폴리테크닉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저녁과 주말에는 파리에 나가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 등의 서유럽 국가들이 모두 프랑스와 인접해 있어, 마치 서울-부산을 가듯 고속철도를 타고 유랑하며 유럽여행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전음악 감상이 취미인데, 매일같이 파리에서 열리는 초일류 음악가들의 공연을 음반 한 장 값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매 월 첫 번째 일요일에는 파리의 모든 박물관에 무료입장이 가능한데, 루브르(Musée du Louvre), 오르세(Musée d'Orsay), 오랑쥬리(Musée de l'Orangerie) 등의 박물관을 얼마든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에펠탑, 개선문, 노트르담 성당, 베르사이유 궁전 등의 관광지는 관광객들 몫으로 남겨놓고, 마치 파리지앙(parisien) 마냥, 센느 강이 보이는 파리 한구석의 노천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호젓하게 여유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푸른 눈의 매력적인 프랑스인과 낭만적인 연애를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은 보너스로 남겨두겠습니다.

물론, 위의 문화생활을 오롯이 즐기고 싶다면 불어공부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는 필수입니다. 학업과 관련해서 언급했지만, 학교에서 공부하는 데는 영어만 능숙하게 구사해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프랑스의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프랑스 파리의 한가운데서 인파 속에 몸을 맡기고, 특히 대화를 즐기는 프랑스인들과 소통하며, 예술적이고 시적인 은유가 가득한 불어의 향취에 빠져보세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배움에 투자한 노고보다 몇 배의 즐거움을 보상받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프랑스인들이 한국 사람처럼 행동할 것이랑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평소 한국에서 자신이 개인적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적응이 빠를 수도 있습니다. 파리지앙들은 좋게 말한다면 대단히 독립적이고, 좀 나쁘게 묘사하면 개인적입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동시에 파리 시민들의 사고방식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불어의 두 가지 관용적 표현이 바로 Je m’en fous(나랑 상관없어)Tant pis(아님 말구/할 수 없지)인데, 가끔씩은 쌀쌀맞고 매정하다는 느낌마저 들지만, 한편으로는 타인의 간섭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숨가쁜 경쟁, 타인의 과도한 간섭등과 아주 큰 대비를 이루어냅니다.

옛말에 십 년이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인데, 유학생활을 마치는데 오 년이 지났으니 그 동안 강산이 못해도 반쯤은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외국에서 바라본 한국의 위상도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박지성, 박주영, 김연아 등의 스포츠 스타들이 활약하며 한국의 이름을 알렸고, 2010년 월드컵과 2012년 올림픽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약진이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인상을 남겼습니다. 아울러, 삼성과 LG에서 생산한 첨단 전자제품이 소니, 파나소닉 등을 제치고 전자제품 매장에서 눈에 가장 잘 뜨이는 곳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가수 싸이까지 유명세를 얻으며 한국의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 저도 피할 수는 없었나 봅니다. 거기에 맞춰 저도 많이 변했습니다. 철없고 좌충우돌하던 성격은 오 년간의 유학생활 동안 차분하고 진중해졌고, 제가 취하는 일거수일투족이 주위 외국인들에게는 한국 사람에 대한 첫인상으로 느껴진다는 부담에, 저도 모르게 좀더 진솔하게, 겸손하게, 그리고 매사에 열심히 임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주위 모든 분들의 도움에 힘입어, 그리고 복수학위 제도의 귀중한 기회까지 얻어, 공짜나 다름없는 비용으로 해외 명문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올 수 있었고, 해외 박사학위를 받아 귀국하여 좋은 직장에 취업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오 년간은 지금까지의 제 삶에서 가장 뜻 깊고 인상적인,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귀국 후 시차적응과 재충전을 한 지도 어느덧 한 달여가 되어 갑니다. 한 벌뿐인 낡은 양복을 꺼내 입고 졸업논문 심사를 받던 날이 마치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며칠 전, TV를 보던 중 문득 유럽여행 관광상품 광고를 보았는데, 그 안에 있는 파리의 풍경이 이제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고향집에서 앓는 향수병(鄕愁病)이라니,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밤은 모처럼 프랑스 와인 한잔과 함께 지난 유학생활을 추억해 볼 까 합니다.